김국현(IT평론가) 2006/06/26
웹2.0 이런 말을 들었다.

"이제 더 이상 IT는 기술자의 것이 아닌 것 같아요......"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이제 정말 기술은 자신의 할 일을 다했구나 라는 체념과 이제 기술은 아무래도 좋다는 무관심이 이 사회의 보편적 정서가 되어 버렸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가라앉는다.

하긴 최근의 인터넷 트렌드를 보면 이제 IT에 있어서의 의제 설정 기능조차 이과의 몫이 아니라 문과의 몫이 되어 버린 것 같다. 과거의 벤처 창업주들은 기술자가 대다수였지만 이제는 오히려 기술이 지닌 사회적 영향력이나 경영을 위한 도구로서의 기술을 고민해 온 비기술자가 기발한 아이디어를 잘도 뽑아낸다.

실제로 근래 국내에서 성공한 대부분의 서비스들을 보자. 지식iN과 싸이만 보더라도 이들은 지극히 '휴먼 터치'를 중시한 문과적 서비스들이다. 종래의 IT 피플 들은 알아듣기 힘든 말로 관심 없는 효율화를 이야기하는 동안 '개발자'가 아닌 '기획자'들은 사회를 뒤바꿀 현상을 포착 재빨리 구현해 버렸다.

코드 잘 짜는 능력보다는 미디어의 생리, 경영 전략, 인류의 사회적 특성을 아는 이들에게 스포트라이트가 가고 있는 것이다. 그 배경은 두 가지다.

① '이상계'라는 세계 건설에는 현실만큼이나 복잡 다단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 기술보다는 현실에서의 경험치가 아쉽다.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이 아닌 일을 시킬 사람이 요긴하다.

② 오픈소스와 스크립팅의 대중화로 최소한의 노력과 학습욕만 있으면 전산을 배우지 않은 비전문가도 피상적인 결과는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아예 직접 짜거나 기술자가 필요하면 파견 조달하면 된다. 기술 그 자체가 우스워 보이고, 컴퓨터는 알고리즘을 고민하지 않아도 될 만큼 빨라졌다.

이런! 기술이 일용품이 되어 버린 것이다. 니콜라스 카르의 "IT doesn’t matter(IT는 중요치 않아)" 논쟁이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정말 기술은 차별화 요소가 아닐까? 인프라는 얼추 갖추어졌기에 아이디어만 내면 되는 것일까? 기술은 사다가 붙이면 그만인 소모품이 되어 버린 것일까?

아니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아니다'라고 믿는 일에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고 믿는다. 그리고 더 나아가 바로 이러한 시각의 차이에서 진정한 IT 강국과 그렇지 못한 곳의 차이가 난다고 생각하고 있다.

시민 저널리즘과 소셜 네트워크는 한국이 먼저 선보였지만 그것을 블로그라는 '세계적 구조'로 형성시킬 줄은 몰랐다. 국내 포털은 지도 서비스 등 독특한 서비스를 일찍이 시작했지만 구글 맵스처럼 '매시업'으로 숙성시키지는 못했다. 더 나은 인터페이스를 위해 우리는 급하고 편한 대로 액티브X를 쓸 줄만 알았지 우리에게 주어진 웹표준을 잘 정리해서 'AJAX'와 같은 기술 트렌드로 승화되도록 공론을 모을 줄은 몰랐다.

대형 컴퓨터로 할만한 일은 다 했다 생각할 때 PC가 등장했고, 닷컴은 허상이었다 할 때 구글이 등장했다. IT의 성공 신화는 하나 같이 기술의 역습이었다. 그리고 그 기술을 둘러싸고 생태계가 형성되고 관련 산업이 성장했다. 기술에 의한 경제권을 그리고 생태계를, 이러한 순환 구조를 만들어 낼 줄 아는 이가 진정한 IT 강자인 것이다.

이것이 기술의 힘이다. 더 정확히는 기술을 이야기하는 힘이다. 무엇이 이 사회에 옳은 기술인지 이끌어 내는 힘이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힘을 이 땅은 잊어 가고 있다. 그나마 있던 기술 벤처들의 수는 갈수록 줄어 간다. 이제 이 땅은 외국 기술의 납품전 시험장, 이노베이션 없는 인해전술의 각축장이 되어 간다. 나는 원천 기술에 대한 낭만적 환상은 지니고 있지 않다. 우리가 냉전 시대의 소련도 아니고 모든 기술을 독자 개발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기술에 대해 토론하고 선정하고 발견하는 힘을 간과한 결과를 우리는 오늘날 우리의 IT에서 목격하고 있다.

웹 2.0이라는 논의 자체가 이 땅에서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것 자체가 우울한 결과다. 가장 먼저 브로드밴드화가 이루어진 곳이기에 참여니 개방이니 공유니 하는 '이상계 건설 행위'는 이미 시도된 지 오래다. 그러나 '플랫폼으로서의 웹'과 같은 구조를 함께 이야기하고 널리 비전을 제시하는 일은 간과한 나머지, 우리는 웹 2.0과 같이 그 흔한 키워드 하나, 세계를 향해, 아니 우리 내부에조차 뱉어낼 줄 몰랐던 것이다.

그 결과 몇 년이나 지나 미국에서 이야기를 정리해 주어야 이제 겨우 뒷북을 치듯 우리가 이미 다 해 온 일을 그에 맞춰 고쳐 보려 하고 있다. 우리가 더 먼저 했고 더 잘났다고 주장해 봐야 소용 없는 일이다.

웹표준 문제, OS 문제, 액티브X 문제 등등 우리가 고민해 보고 이야기해야 할 것은 너무나 많았다. C++의 아버지 비얀 스트라스트럽의 말마따나 "우리의 문명은 소프트웨어 위에서 돌아가고 있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논의를 게을리했다. 그 결과 넘쳐나는 아이디어만 엮어 놓은 누더기만 양산하고 있었다.

이 와중에 우리는 호사롭게 이공계 기피를 이야기한다.

아직은 아니다. 우리는 'IT 강국'이란 자화자찬에 취해 기회를 놓쳤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프론티어에 있다. 우리에게는 풀어야 할 많은 숙제가 있다.

IT는 결코 할 일을 다 하지 않았다. 음성 인식, 자동 통번역 등등 끝이 없다. 이러한 신 분야에서 엄청난 기회와 패권이 갈릴 것이다. 아직 기술이란 아무래도 좋은, 무관심해도 좋을 만한 토픽이 아니다. 앞으로 나노 기술과 양자 컴퓨터에 의해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21세기를 바꿀 혁명에 동참하는 길. 그것은 기술을 공부하는 일이다. 그렇게도 꿈꿔 온 '과학기술입국'의 희망을 되찾는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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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09-12-31 15:2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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