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방학이 끝나기 전 어디라도 한 번 바람을 쐬어주고 싶어 나는 휴가를 내었다. 우리 가족은 양양으로 떠났다. 그리고 마지막 날 설악산에 들러 케이블카를 타기로 했다. 정말 올해는 이상 기온이 맞는 것 같았다. 한 달을 계속해서 폭염이 쏟아 지고 있었다. 설악산은 왠지 시원할 것 같았으나 거기도 다른 곳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유명한 설악 케이블카를 타러 갔고, 한 시간을 기다려한다는 사실도 이미 각오하고 입장한 터라 우리 가족은 다른 많은 이름 모를 동지들과 함께 그리 시원하지 않은 그늘에서 차례를 기다렸다. 5분에 50명씩 케이블카를 타고 3~4분 남짓 올라가는 코스였다. 솔직히 나는 조금이라도 빨리 관람을 마치고 에어컨 나오는 차를 타고 빨리 집으로 출발하기를 바랬다. 덥기도 더웠고 퇴근 시간 무렵에 꽉 막힌 외곽순환고속도로에 갇히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 탑승권은 12시 50분에 탈 수 있는 것이었다. 드디어 케이블카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밀려 들어갔다. 우리 아이들은 전망 따윈 생각지도 않고 그냥 의자 같은 곳을 발견하더니 그곳에 달려가 엉덩이를 댔다. 사실 의자라기보다 겨우 두 명 정도 엉덩이만 붙일 수 있는 무슨 받침대 같은 곳이었다. 나는 전망을 보려면 서서 봐야 해서 아이들에게 일어서서 보자고 말하려고 하였다. 근데 미처 그 말을 하기도 전에 우리 뒤에 바로 따라서 들어오던 할머니 한 분이 하는 짜증 섞인 음성을 듣고 말았다. "얘 너흰 일어서서 가라~" 뭐 이런 말이었다. 초등 5년생에게 하는 말이었다. 에어컨 안되는 덥고 습한 분위기에서 잔뜩 짜증이 묻어 있는 얼굴에서 나오는 말이었다. 순간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뒤에 노인이 오는지 살피지도 않고 먼저 자리를 발견하고 앉은 잘못을 해서 기분 좋아야 할 추억을 잠시 나마 망치고 말았다. 설령 아이들이 만약 노인들이 옆에 있는데도 계속 앉아있었다면 나나 애 엄마가 그냥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이는 올라가는 내내 별 말없이 시무룩해져 있었다.

나도 말은 안 했지만 그 일은 나에게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 할머니와 일행인 듯한 아주머니 한 분이 무안했는지 잘 안들리는 목소리로 아이에게 뭐라고 미안하다고 하는 것 같긴했다. 그 할머니 세대는 물론 어릴 적부터 노인 공경을 절대적 항목으로 교육 받으며 자랐을 것이다. 나도 물론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물론 우리 애들도 최소한 한 두 번쯤은 그런 말을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공경의 대상인 분들의 자격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공경'의 대상인 할머니는 그 때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던 걸까? 나이를 먹는다고 다 현명해지거나 공경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 주는 사건이었다.

그 할머니는 아이가 주변에 노약자가 있는지 살필 수 있도록 잠시만 기다려줄 수는 없었던 것일까? "얘야 할머니가 다리가 아파서 그런데 양보 좀 해줄 수 있니?" 이렇게 부탁하는 방법을 아이에게 보여줄 순 없었던 것일까? "자리에 앉을 땐 항상 주변에 노약자가 있는지 먼저 살피고 나서 앉아야 한다"라고 가르쳤어야 했나?

나는 노약자가 되고 싶다. 조급한 젊은이가 닮고 싶어하는 여유로움과 너그러움을 가진, 몸은 약해졌지만 품격은 강한, 공경 받는 노약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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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9-12-14 00:4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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